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지 5년 만에 북한의 침공으로 6.25 전쟁이 발발한다. 6.25 전쟁은 수백만 명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와 행방불명자들을 낳았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양극화를 발생시켰다. 전후 북한에서 건너온 실향민들과 베이비붐으로 엄청난 인구가 폭증하였지만 사회 구조는 여전히 농업사회에 머물러있었다.
이 시기의 가난함은 한강의 기적 참고. 1961년 포린 어페어에 기고된 기사를 보면 말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던 전후 상황을 알 수 있다. 이땐 먹을 거리가 없어서 자기 몸의 때를 먹었다는 증언도 있을정도로 너무나도 끔찍했다.기사. 이렇듯,1950년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암울한 시대로 인식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.
1950년~61년에 미국에게 제공받은 경제원조는 27억 달러에 달하였고 이 외에 많은 군사원조도 주어졌다. 이러한 막대한 원조는 전후 시설 복구 및 극도로 어려워진 민생고를 그나마 유지하는데 크나큰 역할을 하였으며, 이승만 정부는 원조를 바탕으로 공업 생산에 투자를 하여 제조업이 급속히 성장하였다. 더욱 괄목한 변화는 의무교육을 제정해, 국민학생은 1960년까지 총 360만 명으로 (1945년 대비) 2.6배 증가했고, 중학생은 53만 명으로 10배 증가했고, 고등학생은 26만 명으로 3.1 배 증가했고, 대학생은 7800명에서 9만 8천 명으로 12배 이상 증가하여 당시 영국의 대학입학률을 능가하게 되었다.
선진국에 유학을 떠나는 대오도 활발해져, 1951년~59년에 5000여명이 떠나고 훗날 이들은 대거 귀국하여 국가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. 이러한 교육의 확산은 1960년대부터 전개된 고도성장에 적응할 수 있는 노동력을 공급하게 되었다.
한편 제주도에서는 이념 갈등으로 인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지속되어, 제주 4.3 사건으로 인해 무려 약 3만 명[7], 당시 제주도 인구의 약 10분의 1이 살해당하는 참사를 겪었다. 탄압과 학살은 1949년부터 시작되었지만, 1956년까지 7년이나 지속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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